2010/12/13

「국경근방의 안녕」을 중요시하는 중국이 보는, 평양 내정의 "한가지 가설"

출처: 現代ビジネス


 김정일 총서기도 컨트롤 불능? 김정은(27세)파와 김영춘(74세)파에 의한 엄청난 권력 투쟁


 12월8일에, 조선인민군이, NLL(북방한계선) 근처의 백령도 북동해역에 포탄을 쏘는 등, 북한의 불순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평양의 「그들만의 저택」('奥の院'의 의역)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것인가. 여기에서는 북경으로부터의 "일설"을 전하려고 한다.


 북경에서는, 북한 내부에서 현재, 「2파」에 의한 권력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 중 한 파는, 김정일 총서기(68세)의 "후계자"로 등장한 3남, 김정은(27세)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 고위 관료의 개혁개방파.


 또다른 한 파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국방장 74세)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인민군장로의 보수파이다. 본래, 김정일 총서기가 요석으로, 이 두파를 완전 장악하고 있었으나, 작년 여름의 뇌졸증의 후유증으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현재, 양 파에 따른 유혈 권력 투쟁이, 수면 아래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부터 양 파의 주요한 「행동」을, 아래에 정리해보았다.


 김정은 파
   2009년 1월   김정은이 내부에서 후계자로 지명됨
              4~월 150일 투쟁 (모든 생산력을 상승시키는 전국 운동) 개시
              11월 데노미네이션 실시 (통화를 100분의 1로 삭감)
   2010년 3월   조선국가개발은행을 설립
              5월   남북화해의 상징인 개성공업단지에 시찰단을 파견
              8월   김정은 방중
              9월   김정은이 당대표자대회에 등장, 중앙군사위원회부의원장에 취임
              10월 평양시를 시작으로 11인의 시,도 당위책임서기가 중국 동북 삼성을 시찰
              10월 조선과학기술대표단이 방중, IT 산업 협정을 조인


 김영춘 파
  2009년 5월   2번째의 핵실험강행
             11월 서해에서 한국 해군과 총격전
  2010년 1월  박남기 당계획재무부장(76세)을 데노미네이션 실패의 책임을 물어 총살형
             3월  서해에서 한국해군의 「천안호」를 격침
             7월  김영춘국방장이 핵저지력의 강화를 선언
             11월 미국의 방북단에, 연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
             11월 한국이 실질 지배하고 있는 연평도를 포격 (직역입니다. 거긴 우리땅)
             12월 NLL 부근에서 포탄 연습


 이처럼, 과거 2년의 북한의 중요한 움직임을 돌아보면, 2중 나선과 같이, 모순된 「2가지 방식의 행동」이 양립되고 있다.


 <김정은파>가 꾀하는 「개혁개방의 청사진」은, 김정은 자신이 전면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조선국가개발은행의 제1회이사회(올해 3월 10일)에서 의결된 「2010-2020 경제기초건설 10년계획」에서 볼 수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우선 2년 이내에, 총 100억 달러의 자금을, 해외에서 조달해온다. 그리고 조선국가개발은행 주도하에, 25개의 회사를 설립해, 철도, 도로, 항만, 전력의 인프라를 설비한다.


 동시에, 전국 8도시에, 중국식의 「경제특구」를 설립한다. 8도시는, 수도인 평양, 1991년부터 경제특구구상이 있었던 나선, 북한 최대의 항만도시인 서해안의 남포, 중국과의 국경 가까이에 있는 서해안의 항구 도시, 신의주, 동해안의 2대 항구 도시인 원산과 청진, 동쪽 지역에서 공업 및 광산 도시인 김책과 함경이다.


 이 8개 도시에는, 각각의 이점을 살린 경제 특구를, 빠른 시간내에 건설한다. 이 계획 하에, 올해 10월에 각 지방의 책임 서기가 중국을 시찰했던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이, <김영춘파>이다. 일찍이 중국에서, 덩샤오핑이 시작한 개혁개방에는, 두가지의 측면이 있다. 경제의 개방과 군의 삭감이다. 경제의 측면만 주목받았지만, 덩샤오핑은 반면에, 인민해방군을 100만인 규모로 슬림화했다.


 사회주의국가에 있어서, 경제의 개방과 군의 삭감은 표리일체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북한에서 똑같은 것을 하려고 하면, 기득권을 쥐고 있는 북한인민군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작년 11월에 김정은과 경제 관료들은, 데노미네이션을 단행했고, 이것은 북한인민군을 직격했다. 본격적인 겨울을 맞이하는 도중, 100만인을 넘는 군인은, 통화가 돌연, 100분의 1로 삭감되어 패닉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김정일 장군이 1995년 이래, 15년에 걸쳐 주장해온 「선군정치」(군 최우선의 정치)에 역행하는 역적행위이라고 하는 분노가 군내부에서 일어나, 김정은 대신에 표면적인 책임자인 박남기를 총살형에 처함으로 진정시킨 것이다.


 김정은이 데뷔한 조선노동당대표자대회가 연기를 거듭해, 겨우 올해 9월 말에 개최된 것도, <김영춘파>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후의 전개는, 당분간 양파의 격돌이,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에서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 북한의 이들 사이의 일련의 「만행」이, 한국이나 일본에 적의를 품고 한다기 보다는, 내부의 권력 투쟁의 불꽃이 밖으로 튕겨져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주도적으로 한국공격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김정은의 개혁개방로선을 저지하기 위해 군이 폭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용한 점은, 김정일 총서기의 수명이다. 북경에서는, 김총서기가 주장하는 「강성대국(정치·경제·군사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고 김일성주석 탄생 100주년의 1012년)까지, 본인이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젊은 김정은이 군의 장로들을 달래 후계체제를 세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역시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국경 부근의 안녕」일 뿐이지, 근미래에 북한에서 누가 권력을 잡을 것인지 등은, 기본적으로는 「내정불간섭」의 자세를 취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김정일의 사후에 쿠데타에 직면한 김씨 일가가 중국에 망명했을 때에는 「황장엽방식」을 따를 것이라고 한다.


 즉, 1997년에 황장엽 서기가 북경으로 망명했을 때, 약 2개월의 체류를 허가했을 뿐, 필리핀으로 추방하였다. 마찬가지로, 김씨 일가에 대해서도, 「열렬히 환영」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6.25 전쟁 이후 북한과 중국의 「피를 나눈 혈맹」따위는, 중국에 있어서는 아주 먼 옛날의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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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갑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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