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8
중학교 미술 선생 이야기
오늘 갑자기 중학교 때 미술 선생이 생각이 났다. 그 선생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선 워낙 오래전 일이라서 사실확인이 잘 안되고, 내 기억 속에서 왜곡되었을 수 있다는 걸 전제해둔다.
그 당시에는 '사랑의 매'를 가장한 선생으로부터 학생으로의 폭력이 난무했던 시기였었다. 게다가 학생들마저 폭력에 길들여져있던 시기라서, 봄만 되면 여기저기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선생들은 그 폭력에 맞서 폭력으로 대응하던 때였다. 선생들은 언제나 완전 무장을 하고 수업에 임했었다. 특히 학생부는 교무실과 별도의 공간으로 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각종 체벌 도구가 완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은 학생부에 가는 걸 제일 싫어했었다.
그 미술 선생도 학생부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도 오래전 일이라서 가물가물해서 확신은 안 들지만, 그렇게 연상해도 좋을 정도였다고 말해두고 싶다. 미술 시간에 떠드는 것은 혈기왕성한 젊은 미술 선생으로부터의 체벌을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파워는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미술 선생이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너네들 분하면 서울대 간 이후에 복수하러 와라'였었다. 내가 당장 드는 매는 너희를 위한 매이고, 이 매는 앞으로 너네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투였다. 그 결과로 그 선생이 담임을 맡는 반은 평균 성적이 매우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2학녀 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전교조라는 말을 처음 들었었다. 지금도 전교조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작할 때 많은 박해가 있었고, 학생들이 전교조를 언급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던 시기라서 알아보려고도 안 했을 뿐더러. 졸업하고 나서는 딱히 내 일이 아니라서 관심을 끊고 살았었다. 즉, 전교조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런데 그 미술 선생이 어느날 전교조 소속이라는 것이었다. 가슴에 전교조 표시를 달고 나왔고, 모르긴 몰라도 교무실 내에서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 선생은 해고를 당하게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선생이 마지막으로 울먹이면서 했던 말의 취지는 '전교조라는 게 나쁜 것이 아니다, 다 너희를 위한 것이다. 오해하지 마라' 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설득력 제로였었다.
그 이후부터 적어도 나의 전교조에 대한 인식은, 별로 좋지 않음....이었다.
물론 극히 개인적인 일 예에 지나지 않는다. 전교조라고 해서 전부 다 그 선생처럼, 어제까진 사랑의 매를 휘두르다가 갑자기 전인교육을 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폭력을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선생들도 있었다. 학교 분위기상 그런 선생이 수업을 이끌어간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선생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어제까지 폭력을 쓰다가도 오늘 깨달아서 폭력을 안 쓸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선생은 학생들이 본인의 행동의 변화에 대해 학생들에게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살기등등한 선생이 갑자기 온순한 양이 되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이해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