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상가 10人 다산 정약용 (예문서원,2005년,433쪽)
조선 사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쟁을 겪고 난 후 대체로 17세기 후반기부터 국내 상업과 청국 및 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 무역이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18세기 전반기에 들어선 후로는 서울의 시전市廛 상인·경강京江상인 및 개성開城상인 등에 의한 특권상업·매점상업이 성행하여 중소생산자 및 중소상인·도시소비자를 압박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18세기 후반기에 들어와서는 우선 서울 시전상인들의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통한 특권상업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것은 체제공이 주도한 신해통공(1791)으로 나타났다. 정약용은 우선 신해통공을 다음과 같이 지지하였다.
(신해통공이 실시되자) 서울의 시전상인들이 그것을 반대하기 위하여 공(체제공)의 집 앞으로 메웠고 원망이 분분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그것의 시행이 옳지 못하다 하였으나, 1년쯤 지나고 나니 물화가 모여 들어 백성들의 생활품이 넉넉해졌고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전에 원망하던 사람들도 모두 공의 정책이 옳다 하였다.
통공정책은 정부에서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을 일정하게 제한함으로써 중소생산자층과 중소상인 및 도시빈민층을 보호하려는 정책으로, 정약용은 이 정책을 지지하면서 특권상업에 반대하는 의견을 간접적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시사하는 바가 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