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13

재일한국인 극작가 김봉웅 씨 타개에 관한 블로그

오늘 아침 아사히 신문 트위터에 뜬 기사를 보고 번역합니다.

출처: http://www.asahi.com/national/update/0713/TKY201007120520.html

츠카 씨 유언 「한일 중간에 뼈를 뿌려달라」 많은 배우들 비통해해

1월에 암과 투병 중이라고 공표한 후, 10일에 62세의 나이로 운명한 극작가 츠카코우헤이 (한국명, 김봉웅). 츠카 씨와 같이 무대를 만들고, 키워진 배우들로부터 「반드시 회복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등 원통해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큰 별이 또 하나 졌다. 외롭습니다.」 70~80년대, 무대 「열해 살인 사건(熱海殺人事件)」「카타마 행진곡(蒲田行進曲)」등에 출연했던 카토우 켄이치 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저에게 있어 스승. 연극으로는 밥먹기 힘들었던 시대에 연극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보여지는 연극』과『생각하는 연극』을 양립시켰던 분입니다. 연습장에서는 체온이 2,3도 올라갔었습니다.」

 츠카 씨는, 배우들이 연습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왔던 대사를 무대에서 바로 사용하는 「구치타테(口立て, 연극을 잘 몰라서 우리말로 번역을 못하겠네요.)」라고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연기자가 그 장면에서 밖에 말할 수 없는, 감칠 맛나는 좋은 대사를 끄집어내주었다.」라고 가토우씨는 말했다.

 2월 상영의 연극 「비룡전 2010 라스트 프린세스(飛龍伝2010ラストプリンセス)」의 연습에서는 병상에서 지도했다. 주연의 쿠로키 메이사(黒木メイサ)씨는, 이 때의 취재에서 츠카 씨의 작품 데뷔 당시를 되돌아보며 「오키나와 현에서 도쿄에 막 상경한 15살의 소녀가 말하기 힘든 부끄러운 단어를, 츠카 씨는 대사로 하게 해서 힘들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비보에 쿠로키 씨는 「츠카 씨는 많은 애정을 주셨습니다. 은혜를 갚기 위해 배우를 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초기의 츠카 씨의 작품과 연이 깊은 배우들도 충격을 숨기지 못하였다. 카자마 모리오(風間杜夫)씨는 「보통 사람의 배, 아니 백배 이백배의 에너지를 가지고 계신 분이어서, 반드시 다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실 거라고 확신했었습니다만.......」. 히라타 미츠로(平田満)씨는 「너무 빠른 이별에 충격을 받아,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영화로도 제작된「카타마 행진곡(蒲田行進曲)」에서 주연을 한 마츠자카 케이코(松坂慶子)씨는 「몸과 마음을 모두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연기자에게 보여주셨다.」라고 담화를 발표했다.

현재, 츠카 씨 작품 「히로시마에 원폭을 떨어뜨린 날(広島に原爆を落とす日)」의 연습이 계속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테마로 한 본 작품은 8월6일, 도쿄・시부야에서 개막한다.

     ◇

 10일에 돌아가신 극작가 츠카코우헤이(김봉웅)씨는, 올해 1월1일부로 「유언」을 써서, 4월 초에 매니저에게 「죽으면 열어보도록」이라고 전했다. 유족의 동의를 얻어, 츠카씨의 사무소가 공개했다.

(이하)

친구, 지인 여러분, 츠카코우헤이입니다.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인생이었습니다.

먼저 가는 사람은, 뒤에 남은 사람에 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종교도 없을 뿐더러, 계명(불교에서 불문에 들어간 사람에게 주는 이름:출처 네이버 사전)도 묘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장례식 등도 일절 사양하겠습니다.

딸에게 일본과 한국의 사이, 대마해협 부근에 뿌려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과분한 후의, 정말로 감사합니다.

2010년 1월 1일 츠카고우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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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알게된 극작가라서, 무슨 의미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뿌려달라고 한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아무 의미없이 그 장소를 택한 걸 수도 있을 겁니다. 저 혼자 괜히 재일 한국인이니까 혹시나? 라고 생각한 걸 수도 있구요.
그래도 그저 바다에 뿌려달라고 하면 될 걸 굳이 '한국과 일본 사이'를 지정한 게 마음에 걸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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