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31

김수현 작가의 '천일의 약속'

  마눌님이 김수현 작가의 팬이라서 본의 아니게 주말 저녁에는 그 드라마를 보고 있다. 보고 있다기보다는, 보여지고 있다는 게 더 상황에 맞긴하지만.

 그냥 개인적인 생각인데, 왠지 이번 드라마에는 김수현 작가 개인의 일을 얘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 중, 이번 드라마랑 비슷한 궤적의 드라마가 2003년의 '완전한 사랑'인데, 이게 특히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 렌탑샵에서 빌려서 봤기 때문이다. 마눌님께서 빌려오라는 오더를 내리면 꾸역꾸역 가서 빌려왔던 기억이 난다. 물론 옆에서 어쩔 수 없이 계속 보게 되었고.

 두 드라마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여자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다다르고, 남자는 옆에서 그걸 지켜보면서 괴로워한다. 그런데 김수현 작가의 작품 중, 영화를 제외하고, 드라마에서는 죽음으로 결말을 짓는 게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든 갈등이 회복되는 쪽으로 끝나곤 했는데, 이 두 드라마만 결말이 주인공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게다가 '완전한 사랑'의 경우에는 당사자보다는 주변인의 출연이 더 컸고, 주인공의 죽음은 주변 당사자들간의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로 사용되었을 뿐이지, 그게 중심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천일의 약속'은 주인공의 독백이 드라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주변인은 정말 그대로 주변인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 든다. 주변인은 주인공을 사랑하거나, 도와주거나, 같이 일하는 동료일 뿐이지 극의 흐름에 전혀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애초에 갈등이 존재하던 관계도 아니었고, 그저 무난하게 살아왔던 사람인 주인공이 공감하며 살아왔던 주변인일 뿐이다. 전 애인의 갈등도 이미 마무리 단계고 그 관계를 되살리는 건 서로간에 무의미하다는 건 서로 잘 알고 있으며, 고작해야 감정의 찌꺼기 정도일 뿐이니깐.

 게다가 김수현 작가의 다른 드라마하고 다른 점은, 등장 인물 간의 릴레이션에 의한 진행이 별로 없다. 만일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다른 이들과의 릴레이션이 잘려나가는 병이라는 걸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적절한 방식일 수도 있지만, 이전의 드라마랑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그래서 왠지 김수현 작가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아니면, 적어도 치매에 대한 김수현 작가의 불안감이 드라마 형식을 빌려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